아이가 많으면 걱정이 끊이지 않고 부자가 되어도 아이 때문에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아이 없는 삶이 오히려 편하다는 말로 ‘무자가 장사하자’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아이가 없는 부부의 경우 그 이유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하며 살아야 했다.
자녀가 없는 부부는 자녀가 왜 오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고, 장애인을 자녀로 두고 있는 부모의 경우는 장애인에 대한 공부를 하라는 의미로 삶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연법으로 자녀가 온다는 것은 전생의 빚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녀가 혈육으로 와서 부모가 자녀에게 빚을 갚아야 할 의무(70%)가 있고, 자녀는 부모로부터 빚을 받은 후에 부모에게 빚을 30%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
부모자녀간의 인연은 빚쟁이의 고리로 맺어져 있는 반면 무자비는 직접적인 빚고리가 없기 때문에 사회의 자녀들이 자신의 자녀라는 생각으로 사회에 빚을 갚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는 장애인에 대한 공부를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미련을 갖고 그 아이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평생 노력하는 바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의 경우 30% 정도는 자녀를 위해 노력해야 했고 나머지 70%의 삶은 장애인 자녀가 왜 태어났고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는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자신의 삶에 대한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60대 이후 우리 부모들은 본인들의 삶보다는 자녀들에게 70% 이상 희생되고, 자신의 삶은 30%만 살아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법의 원리는 자녀를 위한 삶 30%, 나머지 70%는 부모의 삶을 살고 사회에 공헌하는 일을 해야 빚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자녀가 원수’라고 말한 이유는 부모자녀간의 전생생활이 빚으로 이어져 있고 부모는 자녀에게 빚을 갚아야 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자녀가 없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빚을 갚을 의무는 없지만 간접적으로 사회에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녀가 없는 부부는 간접적으로는 이 사회에 갚아야 할 빚이 있기 때문에 이 사회에 가까이 있는 아이들이 내 앞과 곁에 있을 때는 그들을 자녀로 생각하고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자비한 부모들은 간접적으로 사회에 빚을 갚기 때문에 의미 있고 보람 있고 유익한 행위를 했을 때 전생의 업으로 이어진 빚을 갚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자녀에게는 30% 기여해야 하고 나머지 70%는 자신의 삶이 사회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전생부터 받아온 빚을 소멸시킬 수 있게 됩니다.
무지한 사람들을 보면 노동자보다는 지적인 일을 하는 의사, 판사, 변호사, 작가 등 지식인에게 무지가 많았던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아이가 있을 경우 자신의 아이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고 아이에 대한 걱정을 끊음으로써 사회에 지적인 일을 많이 하라고 한 것이다.
무자비한 부부는 이러한 자연의 원리가 있음을 알고 사회를 위해 이타행을 하거나 나아가 이광 공익의 삶을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고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거나 어렵게 아이를 낳은 후에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아이들로 인해 마음의 고생을 많이 하며 살게 된 것은 자연의 도리에 역행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진출처 : 밴드 한국의 새>